부산진구 지명유래4

부산진구 지명유래4 소개

안녕하세요.
서면호빠입니다.

오늘은 부산진구의 개금동과 범천동의 지명유래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진구 지명유래4

부산진구 지명유래4 개금동(開琴洞)

개금동(開琴洞)의 조선시대 행정명은 와요리(瓦要里)라 칭하다가 1904년 개금리라 칭한 것으로 보여진다.
가야리와 상대하여 경부철도 건너 북쪽에 있는 마을을 개금동이라 하였다. 이곳 고로들의 말에 의하면,
이 마을의 모양이 꼭 거문고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상이라 하여 개금이라 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이
토착지를 등지고 하염없이 피난길을 헤매던 어느 날 푸른 산림이 우거지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 아늑한 계곡이
뻗어 있는 이곳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가야금 소리를 듣고, 바로 이곳이 장차 평화의 뿌리가 뻗어날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되어 전란의 시름을 달래면서 처음으로 마음놓고 거문고로 한 곡조를 타고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문고를 말미암아 이곳에 살게 되었으므로 개금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최씨, 배씨, 송씨 등이 오랫동안 거주했으며, 가장 오래된 경주 최씨도 18~19대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개금동의 명칭이 1900년 이전의 읍지에는 나타나지 않고『동래군지(1937)』에 개금리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일제시대부터 개금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1959년 가야동에 흡수되었다가, 1963년 가야동에서 분동되었고, 1975년 인구의 증가로 개금1,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76년 개금1동에서 개금3동이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범천동(凡川洞)

범천(凡川)은 오늘날의 자성대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강으로 동천(東川)이라 한다. 옛날에는 이 강을 풍만강(楓滿江)·
보만강(寶滿江)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풍만(豊滿)이라는 음이 변하여 생긴 이름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동천을 범천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범천의 물줄기가 원래 자성대의 서쪽으로 흘러 바다에 유입되었는데,
자성대 부근의 매축 때 두 시내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동천이란 부산진성의 지성(支城)인 자성대 쪽에서 볼 때 성의
동편을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범천은 증산(甑山)에 인접한 산들이 산세가 험하고 산림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서식하였는데, 호랑이가 이 계곡에서 자주 출몰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따라서 범천은 한자식으로 호천(虎川)이라고도 표기하였다.
따라서 범천동이라는 동명은 범내〔凡川〕에서 유래되어 범내골을 중심으로 그 인근의 지역을 지칭하는 동명이 되었다.
1957년 구제실시로 동구에 편입되었다가, 1959년 시조례에 의해 동구 범일4동을 부산진구에 편입시키면서
범천1,2,3동으로 개칭하였다. 1966년 범천2동이 범천2,4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남구의 신설로 범천3동은
남구에 편입되었다가, 1982년 문현5동에 편입되었다.

※ 참고사항

행정동은 행정 운영의 편의를 위하여 설정한 행정구역으로서 주민 수의 증감에 따라 수시로 설치 또는 폐지된다.
이에 비하여 법정동은 대부분 1914년 시행된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정해진 것으로, 예로부터 전해온 고유 지명을
그 명칭으로 하며 거의 변동이 없다. 다시말해 법정동의 의미는 이름 그대로 법으로 정한 동이라는 뜻이다.
반면 행정동은 행정편의를 위해 설정한 행정구역을 말한다. 다시 말해 법정동은 토지 주소, 신분증, 각종 권리 행사 등
법률행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동명이고, 행정동은 주민수의 증가난 감소에 따라 설정되는 행정상의 동명이다.
동주민센터(동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즉 행정 능률과 주민의 편의를 위하여 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하나의 법정동을 2개 이상의 행정동으로 운영하거나 2개 이상의 법정동을 하나의 행정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처 부산진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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