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구 지명유래2
안녕하세요.
서면호빠입니다.
오늘은 부산진구 초읍동, 양정동, 전포동 유래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진구 지명유래2
부산진구 지명유래2 초읍동(草邑洞)
초읍동(草邑洞)은 연지동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금정산의 남북으로 통하는 요충지로 북쪽으로 금용산을 등지고,
남으로는 연지를 지나 부산평야로, 동으로는 화지산이 서쪽으로 달려가는 형상의 작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로는 산(쇠미산)의 산맥이 뻗어있어 천연의 성벽을 이루는 분지이다.
이곳의 동의 명칭이 초읍으로 된 연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동평현이 생긴 후 읍의 치소治所)를 물색하기 위해 명사들이 초읍동을 들러 보았는데, 산의 지세가 좋고 지리가
음양에 맞아 이곳을 우선 읍의 치소(治所)로 선정해 놓고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나하여 현 금정구의 두구동으로
가보니 역시 산세가 좋아 두고 보자한 후 현 동래성에 들렀더니 동으로는 학소대와 남으로는 대조포란형(大鳥抱卵形)이 서울
장안의 산세와 같으므로 이곳을 읍지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먼저 초한 곳이란 뜻에서 초읍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호사가들의 일담에 지나지 않고 실제는 새터가 원래의 고을 이름인 것으로 파악된다.
초읍은 초량을 ‘새뛰’라 부르는 것과 같이 초는 새로 읽히며 읍은 량·탁·벌·성 등의 터로 읽혀 ‘새터’로 불릴 수 있다.
새터는 새로운 터전, 새로운 자리라는 뜻이다. 즉, 동평현의 치소(治所)가 지금의 당감동 부근이었는데 고려후기 이후
빈번한 왜구들의 침입으로 동평현이 피폐해지자 천연의 요새인 이곳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이란 뜻에서
새터 즉 초읍으로 불렀던 것으로 풀이된다.
초읍동은 조선후기 동래부 서면 초읍리에 속하였고, 그후 동래군으로 편제되었다.
1936년 부산부에 편입된 후 1942년 연지동과 함께 성지동으로 통합되었다가, 1963년 초읍동과 연지동으로
분동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산진구지명유래2 양정동(楊亭洞)
양정동(楊亭洞)은 『동래부지(1740)』 산천조에는 황령산 아래에서 화지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말하고 있다.
양정동은 『동래부지(1740)』에 는 양정리(羊亭里)라 하였다. 양정(羊亭)이란 정자는 고적조나 루정(樓亭)조에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자(亭子)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지역의 옛 어른들에 의하면, 양정본동 일대에는 수양버들의 실같은 가지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곳을 버들 양(楊)으로 개칭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또 양정은 양지골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이는 양정동에서 황령산을 바라보면 세 갈래 능선이 갈라져
나가고 있는데, 왼쪽은 당산능선, 중간은 평전(平田)능선, 우측은 취병장(吹兵場)능선이 뻗어 내리고 있다.
왼쪽 당산능선 아래쪽에 양지곡 골짜기가 있다.
양지는 음지의 응달에 비하여 양달이라 하여 햇빛이 많이 드는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양달은 양지의 음이 높아 한자의 양(羊)으로 표기되고 지(地)는 정자골(亭子谷)이 정자꼴로 읽히는 것으로
보아 정(亭)으로 된 것으로 풀이된다.
1970년 양정1, 2동으로 분동하고, 1979년 양정1동을 양정1, 3동으로, 양정2동을 양정2, 4동으로 분동하였다.
1998년 양정3동을 양정1동에, 양정4동을 양정2동에 통합하였다.
전포동(田浦洞)
서면의 동천이 지금 범일동과 문현동 사이로 흘러 바다로 들고 있다. 그러나 먼 옛날로 올라 갈수록 동천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자리는 서면의 북쪽인 육지쪽으로 올라온 자리였다.
말하자면 바다가 지금의 서면의 육지 깊숙이 들어서 있었는데 홍수 때면 서면 주위의 산에서 쏟아지는 물이
토사를 실어내려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어 갔다. 그렇게 메워진 자리가 갯가가 되고 논밭이 돼 간 것이다.
그 논밭으로는 벼와 보리, 채소들이 재배되었다. 지금은 전포동의 평지는 시가지가 돼 있지만 그때는 갯가의
밭인 밭개였다.
그 밭개가 밭 전(田) 갯 포(浦)의 전포리가 된 것이다.
이 지역의 고로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전포동(田浦洞)의 노막리 또 농막리까지 조수가 들어 배가 많이
정박하였다고 한다.
1949년 전포1, 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70년 인구 증가로 전포1동은 전포1, 3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전포2동은
전포2, 4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98년 전포2,4동을 전포2동으로 통합하였다가 2015년 1월 1일부로 전포1,3동을
전포1동으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부산진구청
부산진구 지명유래2 소개 끝



최신 댓글